정사호 선생 묘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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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9.01 00:00
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| 정사호 선생 묘역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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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| 동두천시 향토유적 6호 |
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| 유형문화유적 |
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| 기념물 |
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| |
소재지지번주소 lnmadr | 경기도 동두천시 안흥동 산 21-6 |
위도 latitude | 37.9365177 |
경도 longitude | 127.0456987 |
지정일자 appnDate | 1986-04-28 |
소유주체구분 posesnSe | 사유 |
소유자명 ownerNm | 정영호 |
규모 scale | 묘역 |
조성시대 makePd | 조선(광해군) |
이미지정보 picInfo | https://www.ddc.go.kr/tour/contents.do?key=594 |
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| 정사호(鄭賜湖, 1553∼1616)는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몽여(蒙與), 호는 화곡(禾谷), 본관은 광주로 장령(掌令)을 지낸 이주(以周)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573년(선조6) 사마시에 급제한 후 1577년(선조10)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주서(注書), 호조좌랑, 안동부사, 호조참의 등을 지냈고 금성현령으로 있을 때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왕자일행의 북행길을 호위하고 현민소개에 힘썼다. 또한 정유재란 때 안동부사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큰공을 세워 1601년(선조34) 이래로 다섯 번이나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다. 1602년(선조35) 대사헌으로 사은사(謝恩使)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황해도 관찰사가 되고, 뒤이어 경상도·평안도·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했다. 1609년 선조가 죽자 이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『선조실록』편찬에 참여했다. 이어 한성판윤을 거쳐 1615년(광해군7) 형조판서에 올랐고, 얼마 뒤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. 광해군 8년, 향년 64세로 죽었다.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(忠敏)이다. |
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| 031-860-2105 |
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| 동두천시청 문화체육과 |
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| 2021-09-01 |
ctprvnNm | 경기도 |
sigunguNm | 동두천시 |
sido | 31 |
sigungu | 31080 |
upmyundong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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